━━━ 마실스토리 시즌2/쿠퍼의 가치 좀 살자

[연작예고편]청년들의 개인주의 담론.. 공동체주의는 어디서 찾을까?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3. 21:34

지난주에 작성한 협동조합의 글은 너무 재미없었나보다;;

하긴 내가 봤을 때도 글이 너무 많아서 읽기 너무 힘들었을 내용들이 가득가득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특별히 그림을 넣을게.........)

이번에는 연작으로 내 또래 친구들이랑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연작해보려한다.

물론 내 공부도 되는 부분이 많아서 거저먹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재밌고 우리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시작하기전에...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제목이나 내용의 태그들을 이용해 들어왔을 텐데

분명 원했던 것은 청년들의 개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 했을 것이다.

이 글은 그동안 기성세대가 지적해온 우리, 청년들의 개인주의와 탈정치의 모습으로부터

탈피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사실 필자가 먼저 고민이 됐던 부분은 기성세대와 몇몇의 또래들이 인정하는 개인주의 담론을 인정하면서 점점 더 부각시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공동체 모습을 담아내는 미디어는 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어느새 개인주의 모습만 부각되는 미디어들에 의해 우리도 인정하면서 좌절하고 경쟁을 더욱 중요시하게 되는 문제도 생겼다.

 

'88만원'세대, 이태백, 청년실업으로 대변되는 우리들의 세대담론들....

도전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대변했던 우리들이 좌절하고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으로 바뀌는 이시대 담론들에서 각자 다른 장소에서, 시간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함께하려고 하는 우리모습을 찾아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언제까지 개인주의적이라는 소리들 듣고, 지적당하며 패배주의 의식을 갖고 살텐가.

나는 내가 지금 이 시대에 청년으로 살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함께하는 동료들, 또래들과 함께 우리의 실상을 좀 더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기운내자는 파이팅한 글을 쓰는 것이다.

 

도대체 청년은 뭔데?

 

 먼저 청년이 도대체 뭐길래 기성세대가 지적하고 기대하고 관심을 갖는 것일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청년의 개념은 20대, 30대가 아닌가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2011년 한나라당 중앙청년위원회장인 손인석은 40세, 민주당 전국청년위원장 이상호는 45세, 심지어 한국기독교청년회(이하 YMCA) 이념에서의 청년은 신앙적 믿음과 목적에 맞는 운동을 하는 모든 이를 말한다. 즉, '청년'은 어떠한 나이를 직접 구분하지 않고 상징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 사용했던 사실을 살펴보자. 소영현(2005)은 진보적 의미가 담긴 청년에 대한 언급이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가 ‘기독교청년회’로 번역되면서 본격화 되면서부터 청년담론이 형성됐다고 말한다. 이 시대 기독교 활동은 종교 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한 우회로로써 활동이었다. 진보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청년이라 지칭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청년의 범주를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없는 것은 과거로부터 사용하던 상징적 의미의 모습들로부터 자리잡은 이유일 것이다.

 이 후 1990년대 이후 세대의 개념과 함께 결합되어 새로운 기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주로 기업이 시장의 마케팅 대상으로 ‘과잉기표화(2011, 이광석)’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하나의 기표로서 설정됐다. 지금까지 시대별로 X세대, N세대, M세대, 웹2.0세대, IMF세대, 88만원 세대 등의 대표로 상징되었다. 이 상징적 의미들은 무관심ㆍ무정형ㆍ기존 질서 부정 등을 특징으로 하는 1965년∼1976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로 X세대, 인터넷으로 대표하고 통신 중독증에 걸린 이들이 많다(네이버 지식백과)는 네트워크 세대, 실직하고 경제가 엄청 힘들었을때 살았던 20대인 IMF세대, 청년실업과 일자리에 들어서도 힘들다는 20대인 88세대 등 청년을 상징화 했던 담론들은 어렵고 힘들고 부정적인 시각이 자리잡혀 있다.

 여기서 세대의 개념은 공통의 역사적 체험과 일정한 생애주기를 가져 공통의 의식이나 풍속을 가지고 있는 층이다. 이광석(2011)은 생물학적 리듬에 기반을 둔 사회적 위치로 ‘세대 위치(generation location)’가 아닌 역사․경제․사회․문화적 변수에 따른 결정적 집단 경험의 차이가 보통 ‘실제 세대(actual generation)’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리고 실제 세대는 공유 경험이 커지고 공동 운명체라는 연대감이 형성될 때 가능한데 1990년대 이후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실제 세대들의 모습을 관찰해야하는 것만이 실제 세대를 드러내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2011, 이광석).

 이광석 외에도 청년세대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위한 연구는 계속됐었다. 김창남(2003)은 "10대는 벗어났으면서 아직 사회의 주류

로는 진입하지 못한 어중간한 세대"로 지칭하며 "10대 청소년층에게 선배가 되지만 사회의 지배적 담론체계를 장악하고 있는 그 부모세대에는 아직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또한 이성균(2009)은 발테스와 칼스텐슨, 에릭슨의 연구를 빌어 학교교육을 마치고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이행기로서(transition period from school to work) 취업을 통하여 독립적인 경제생활을 시작하고, 사회적으로 직장생활이나 결혼 등을 통하여 새로운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시기로 지칭한다.

 이렇게 청년의 심리사회적 개념을 국내 현 상황에 맞게 비춰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부터 사회관계 형성과 독립적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취업 평균나이 30세까지라고 볼 때 20세부터 30세 초반까지 청년 세대를 구분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세대적 개념을 빚대어 실제 세대는 중등교육에서 80%내외가 대학에 진학하는 사회적 구조라는 점에서 대학을 빼 놓을 수 없겠다. 청년세대 안에서도 대학이라는 공간을 통해 공유경험과 공동운명체 연대감이 빠르고 쉽게 형성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학생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변수를 고려하면서 청년의 모습을 살펴 본다면 청년세대의 담론을 구분 짓기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의 공동체적인 모습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개인주의에 반하는 개념이 집단주의인데 인간의 심리적, 사회적 상태를 이분화된 모습으로 분류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이분화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글의 내용에서 분명히 개인주의적 사실을 인정하면서 집단적 모습을 갖는, 혹은 공동체주의가 있는 모습을 찾는 것이다.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던지 -사적인 생활에 관련한 문제이거나 이념적인 문제- 청년세대들이 집단화하고 공동의 목표를 가졌던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 고민의 해결은 2011년에 대중적 지지와 논란을 지폈던 반값등록금에 관한 문제로 집중됐다. 1990년대 이후 이념적(민주화를 위한 것이든)으로 오랫동안 집단화 된 계기는 찾기 힘들다. 규모가 크게 집단화된 것은 2002년 월드컵광장에서,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서, 2008년 광우병파동 촛불집회로 좁아진다. 하지만 이것들의 주요 연구의 결과는 온라인에서 출발한 시민들의 모임, 여중생들의 촛불점화 등으로 연결됐다. 청년세대에 대한 집단화는 중심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청년세대의 중심으로 볼 수 있는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기대한다. 사실 20년전부터 등록금은 지속적으로 올랐으며 생활 임계점으로 인해 집단화 된 계기이다. 사적인 이익관계가 놓여진 이 상황에 청년세대의 집단화 된 모습들에서 공동체주의나 집단주의를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겠다. 다시 언급하지만 연작되는 이 글에서 청년들의 개인주의적 논의는 조금 뒤로 미뤄두고 집단화에 대한 논의들을 풀어내면서 그동안의 청년담론의 균형을 맞춰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