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실스토리 시즌2/황금사자

[종묘] 종묘에 대해 포스팅을 하고자 해요^^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3. 18. 10:00

안녕하세요! 황금사자입니다.

 이번주에는 마실에서 1인 1기획으로 종묘에 다녀 왔었답니다.(저는 사정상 참여를 하지 못했어요...ㅠ.ㅠ) 그래서 종묘에 대해 무엇을 포스팅할까 고민하다가... 2009년도에 대학교 교양수업으로 '한국인의 문화유산'수업을 들은 토대로 당시 종묘에 가서 레포트를 작성하고, 강의를 들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종묘란? 왕가의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뜻합니다. 중국에서 기원했죠..

 사서와 오경(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 / 오경:시경, 서경, 주역, 춘추, 예기)중에 하나인, 예기(禮記)에 따르면,

 천자(중국의 황제)는 7묘, 제후는 5묘를 두며, 소목제(昭穆制;천자의 경우 중앙에 시조, 왼쪽에 2, 4, 6세를 소(昭) / 오른쪽에 3, 5, 7세를 목(穆)이라 합니다. 1세는 시조를 뜻함)와 전묘후침(前廟後寢;앞에 신위를 보관할 묘를 만들고 뒤에 옷을 보관하는 침을 둔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 제도가 후한(後漢)시대에 바뀌어져서 동당이실(同堂異室;과거에는 한 왕마다 다른 건물을 만들었으나, 한 건물에 여러가지 방을 만드는 것)의 제도와 서상(西上;예기에서는 동쪽(왼쪽)이 윗대인데, 반대로 서쪽(오른쪽)이 윗대로 차례로 신위를 배치)제도가 만들어집니다. 하여 종묘에 모시게 되는데요, 그것이 종묘의 시작입니다.

 아래의 내용은 종묘와 관련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입니다.

  천자는 칠묘(七廟)를 세우고 제후(諸侯)는 오묘(五廟)를 세우며, 왼쪽에는 종묘(宗廟)를 세우고 오른쪽에는 사직(社稷)을 세우는 것은 옛날의 제도이다. 그것이 고려 왕조에서는 소목(昭穆)의 순서와 당침(堂寢)의 제도가 법도에 합하지 아니하고, 또 성 밖에 있으며, 사직(社稷)은 비록 오른쪽에 있으나 그 제도는 옛날의 것에 어긋남이 있으니, 예조(禮曹)에 부탁하여 상세히 구명하고 의논하여 일정한 제도로 삼게 할 것이다. (태조 즉위교서, 정도전 작성)

이에 조선왕조는 종묘를 태조대에 바로 만들어 배치를 시작합니다. 태조는 조선의 1대 임금이지만, 그 4대 조상을 전부 왕으로 추존(追尊;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사람에게 임금의 칭호를 줌, 태조는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하여 종묘에 모시게 되는데요, 그것이 종묘의 시작입니다.

 종묘에는 정전과 영녕전으로 구성이 됩니다. 최초 정전에서 시작하여 영녕전으로 신위들이 옮겨오게 된 것이죠,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전 : 19개의 신실, 좌우 협실 각 3칸, 협실 양 끝에 직각으로 튀어나온 동서 월랑을 갖추었습니다.

  - 영녕전 : 중앙 본전에 추전 4왕(익조 등)과 왕비를 모시고, 좌우 협실에 종묘에서 옮겨온 왕과 왕비들(정종, 문종, 단종, 덕종, 예종, 인종, 명종, 원종, 경종, 진종, 장조)

  - 칠사당(七祠堂) : 계절에 따라 지내게 되어 있는 7개의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 공신당 :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 제실 : 제사 때 왕이 제사 준비를 하던 곳입니다.

  - 향대청 : 향축(향이나 초)을 보관하는 곳 입니다.

  - 전사청 : 종묘 대제 때 쓰는 제물, 제기 외에 여러가지 기구, 운반구를 보관한 곳 입니다.

  - 악공청 : 종묘제례악 연주 때 악공들이 음악을 준비하여 기다리는 곳 입니다.

 종묘는 옛 임금들이 자신의 조상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당시 백성들에게는 신성 불가침의 공간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조용하게 경건한 마음으로 일반인도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조상의 문화유산 공간이니 당시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관람을 해야겠죠?? 다음주에 달러(Dollars)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