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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시대의 청년들 바라보기(4) - 민주주의 힘은 어디서 오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참여

 

 

 

(1) 민주주의 핵심으로서 정치참여

 

 민주주의라는 이상을 향한 끝없는 실천의 과정으로서 민주화는 국가권력의 민주적 형성과 작동을 통해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홍성태, 2007).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 국가의 권력을 형성하고 작동하게 만드는 정치적 참여는 민주화의 초석이다. , 정치참여는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주권과 정치참여를 그 핵심 내용(최장집, 2010)으로 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주체가 가장 기본이 된다. 시민들의 참여는 곧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박의경

(2011)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는 직접민주주의의 대안으로서 대의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데서 기인한다며 지적하고 있으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도/실행보다는 태도/의식의 평가가 낮다”(김정훈, 2007)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기존의 정치양식이 우리 사회의 권력을 대표하고 대리하는데 충분치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다는 것만은 사실이라는 박주원(2010)의 지적은 한국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만족도는 현저히 낮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가 이상적인 민주주의 형태로서 완전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시민의 태도나 의식이 대의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 행

동을 권유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대표를 국가의 주권자인 시민이 선출해 주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권력이 형성되고 작동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대의민주주의는 대표가 되고자 하는 시민들이 나서서 정당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다른 시민들에게 정책을 제시해서 대표로 선출되어 의회에서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정책을 입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홍성태, 2007).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선출된 대표는 주권을 위임받았으며 그 위임 받은 권력은 선출하게 해준 시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의제는 개인의 정치적 의지를 위임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자유와 양립 할 수 없고 법적, 선거권적 평등을 확보하면서도 평등을 실체적으로 보장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결정인자를 제외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과도 양립할 수 없다. 또한 공동체의 능력을 손상시키고 정의 관념을 근간이 되는 참여적 시민의 발전을 도모하지 않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회정의와도 양립할 수 없다. 결국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시민들로 하여금 대표자들이 작성한 법률에 복종하도록 강제한다(박의경, 2011). 특히 현재의 상황에 보더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족이 높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정부와 의회의 불신을 확대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참여포기가 많아져 대의민주주의에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기까지 한다.

 

 자유와 평등을 위한 민주주의의 의미 발현은 권력의 분배와 공유에서 일어나며 이는 직접 민주주의에서 더욱 발휘될 수 있지만 사회 내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가 직접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평가되는 핵심적인 까닭은 시민들이 매일 아고라 광장에 모였다는 점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치제도에서 선출이 아닌 제비뽑기, 윤번제, 추첨 등에 의한 공직순환을 통해 정치권력이 공유되었다는 점, 그리하여 정치적인 삶과 사회적 삶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박주원, 2010)이다. 자의적이 아닐지라도 권력의 분배와 공유가 시민들의 정치적 삶과 사회적 삶을 연결시켜 자유와 평등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 시민들에 의해 권력이 분산될 수 있는 상태와 시민들의 삶이 정치와 밀접한 연결이 있을 때 민주주의 형태로 가까워진다.

 

 직접민주주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대의민주주의와 아네테의 직접민주주의의 의미가 함께 작동할 때 이상적인 민주주의 형태로 나올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참여는 시민을 시민으로서 바로 서게 하는 중요한 기제(박의경, 2011)로서 이를 통해 권력 분배와 공유를 통해 자유와 평등이 이뤄지며 시민들을 위한 법과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한다.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의 삶이 정치참여로 이어진다면 완성된 민주주로서 민주화 과정이 될 것이다.

 

(2) 정치참여 방식의 전환

 

 아테네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참여나 현재의 대의민주주의에서의 시민들의 권력위임은 결국 시민들의 의해 이뤄지며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 된다. 민주주의 필수조건인 시민들은 그 연합과 연대에서 민주주의를 완성시켜간다. 여기서 시민들의 연합과 연대는 사회의 부의 분배 상황이나 물질적 부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지배 양식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의 실패에 놓여 있으며, 그리하여 그것을 문제 삼고 항의할 때 더욱 자기의식적인 집단의 형성과 정체감의 형성(박주원, 2010)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국사회는 시민들의 연합과 연대로 만들어진 운동(movement)의 전통이 강했다.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서 형성되어 온 조직된 노동자들이나 조직된 단체들 중심의 조직화된 연계 기반한 연대가 중심(정태석, 2009)이었다. 이러한 운동에서 민주화의 체제변화를 이뤄냈고 권위주의로 퇴행에 대응하거나 기존 체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새로운 이슈를 제기할 때 효과적이고 중요한 역할(최장집, 2010)을 했다. 하지만 최장집(2010)은 운동이 시민의 정치참여에 기여를 한 점은 분명히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엘리트주의적이거나 중산층적 급진주의를 내비추고 동원되는 열정의 강도와 비용에 비해 효과가 미약하며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정치에 합당한 행동은 아니(최장집, 2010)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박의경(2011)대중 사회의 등장과 함께, 정치에서의 대중의 역할에 대한 고려하게 됐다며 정치, 경제, 사회 등 지구화, 세계화 현상과 함께 인터넷의 등장은 모든 인간에게 하여금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하면서, 능력 있는 다수, 지적인 대중이 가능함을 알려주었다고 논한다(박의경, 2011). , 열정의 강도와 비용에 비해 효과는 미약하나마 모든 인간에게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점에서 지적인 운동을 동원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운동은 공식적인 결정권이 없는 일반 시민들이 정책이나 법안 등에 변화를 주기 위한 행동적인 노력이다. 이러한 운동이 정치참여 방식 중 하나로서 집회시위는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온라인 정보 공유나 투표 등의 참여행위에 비해 상당한 시간적, 물질적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고 참여자의 자발성이 더욱 요구된다. 그래서 강력한 집단적 에너지와 열정의 분출은 계속하기도 어렵고 한번 분산된 뒤에는 다시 결집하기도 어렵다(최장집, 2011). 또 다른 특징은 국가의 문화적 차이에 따라, 시대 변화의 따라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 상에 놓여있다(2008, 김욱)는 것이다.

 

 시대적 변화와 국가의 문화에 따라 집회시위의 모습은 2000년 이전과 이후의 모습에 차이를 보인다. 2000년 이후 집회는 특정 집단에 의한 이익추구형 시위의 형태를 보이며 20, 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정의와 공익을 위한 촛불시위의 형태를 띠고 있다(김욱, 2010). 또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촛불집회를 비롯한 다양한 새로운 운동방식들이 등장하였으며, 참여자들도 다양한 시민대중들로 확대되어왔다(정태석, 2009).

 

 과거 돌과 화염병 대신에 각종 디지털 기기를 손에 든, 그리고 그 어떤 정치 조직의 지도력도 거부하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시위대로 상징되는 2002년 이후의 촛불집회(이항우, 2012)는 집회·시위가 운동방식의 변화를 맞이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한미 FTA 시위를 원천봉쇄한 정부가 헌법적인 권리인 집회 및 시위의 자유도 무시하는 상황(김정훈, 2007)에서도 2008년 광우병반대 촛불집회는 정보화의 진전으로 디지털 장비들을 통해 시민들은 불만과 요구를 표현하고 집회를 놀이와 축제의 마당으로 만들며 다양한 소규모 네트워크를 형성했다(정태석, 2009). 특히 이러한 집회는 정보화로 인한 네트워크화는 전통적인 운동원리였던 통일성과, 중심성 보다 탈중심성과 비위계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났으며 기존의 제도정치를 통해 수용되지 못한 요구들이 시민들에 의해 광장에서 의사표출 행동이 이루어져 거리의 정치, 광장의 정치를 보여줬다(이항우, 2012; 정태석, 2009). 참여주체에 있어서도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 여중고생들은 청소년 인권이 억압되고 사교육과 성적경쟁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청소년들의 현실 속에서 자신들의 불만과 권리주장을 직접적으로 표출(정태석, 2009)하는 등 다양한 시민층으로 확대됐다.

 

 특히,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는 쇠고기 협상과 안전한 먹을거리라는 생활상의 이슈로서 생활정치’(전효관, 2008)가 쟁점화 됐다. ‘생활정치는 그 이슈가 구체적인 삶의 욕구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그 정치적 힘은 가족과 친구, 이웃, 직장동료 등과의 친밀한 관계망을 통해 형성될 수 밖에 없다(하승우, 2009). 지금의 시민들은 공공의 이슈나 사안들에 대해 변화하려는 정치참여가 각각의 행동들로 비춰 봤을 때 추상적이고 이념과 같은 문제로 삼고 있지 않다. 그 중에서도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직접 생활에서 섭취할 수 있다는 다수의 사적영역의 문제가 공적인 영역으로 만나 정치참여가 이루어지고 있고 대학 등록금 문제도 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고 대학생들은 개개인의 생활에서 나오는 문제를 공적 영역에서 함께 풀어내고자 지금의 생활정치적 형태로 이어지게 된다.

 

(3) 학생조직의 정치참여 변화와 성격

 해방 이후 대학생들이 정치참여로서 집합적 정치참여, 집회의 모습으로 보여준 큰 사건은 4·19혁명이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 반북·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으면서 독재정권이 시작됐다. 경기 불황과 억압적인 정치는 19603·15 부정선거 반대투쟁으로 지역곳곳에서 시민들이 정부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었다. 이 후 김주열군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이 시위를 공산당의 폭동으로 간주하는 담화문을 정부에서 발표하면서 서울에 있는 대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대학생 10만여명은 419일 정치변화 요구와 민권의 재탈환의 목표의 구호와 애국가나 해방가 등의 노래를 부르며 시위형태를 보였다.

 

 1970년대 4·19혁명 시대에서 성장한 이들은 전태일분신자살 사건’, ‘민청학련사건등을 거치면서 소수의 엘리트 대학생들이 노동문제와 농촌, 빈민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으며 억압적 체제인 유신체제에 대항하는 모습도 띠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조합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를 해체하거나 재구성해 장악, 포섭했고 자치조직이나 시민조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언론 및 지역 말단까지도 새마을 운동을 통해 장악했다. 이런 사회 환경속에서 학생들은 신분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에 학교 공간에서 조직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다. 유신체제하에서 그동안의 경제개발계획의 결과로 도시 노동제 계급의 문제가 현실속에서 부각됨에 따라 학생조직은 민중의 삶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식이 대두됐다. 그래서 그들은 광산, 공장 등으로 현장 활동 혹은 위장취업을 하게 된다. 이 시기 학생들에게 시위는 유신체제에 반하는 활동이었기 때문에 제적, 구속, 투옥 등으로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했다. 이들에게 집회시위는 희생헌신이라는 의식 속에서 참여하게 된다. 학생운동이 비록 산발적이고 비연속적이지만 나름대로 지속성, 조직성을 갖기 위해 노력해 운동에 대한 의식이 더욱 성장했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입고 결국 유신체제를 뒤흔드는 결정적 역할은 한다.

 

 학생운동이 조직적이고 이념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된 시기는 1980년대이다. 또한 다른 시기와 비교할 때 규모와 치열함은 더 두드러진 시기였다. 노동자 계급이 발전하지 못하고 조직화되지 못했다는 평가는 노동운동에 지식인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확산되었고 그 인식은 대규모의 학생운동가들이 노동현장에 직접 뛰어들게 된다(최철웅, 2011). 징병제를 이용한 시위진압병력의 확충을 바탕으로 1984년 학원자유화조치가 시행되면서 학생운동은 더 성장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경찰은 시위 진압을 위해 사과탄이라는 최루탄을 사용했다. 이에 연세대 이한열 군이 최루탄의 파편에 맞아 숨지는 사건도 있었으며 시위대는 경찰들에게 돌과 화염병으로 대응했다(홍석률, 2007). 이와 같이 1980년도에 집회현장은 돌과, 화염병, 최루탄 등이 난무하는 격렬함과 폭력적 대응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90년대는 이념적 지평이 변화하고 부분적 민주화 과정이 진행(김창남, 2003)되면서 학생운동조직의 중심이었던 한총련은 언론에서 도시게릴라’, ‘난동’, ‘불법시위의 근원으로 표현되어 대중에게 부정적 시각을 얻게 된다. 이후 대학의 중심조직이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대학생들이 개인화 담론이 팽배하기 시작한 1990년 말부터 때로는 공적 사안에 대해 변화를 위해 노동절이나 610항쟁 등으로 집회를 시도한 적이 종종 있었지만 목적과 목표를 뚜렷하게 잡아낼 수 없었다. 2002년 여중생 사건으로 정책적 변화를 요구했던 중심은 반미감정으로 격화된 젊은 노동자와 시민들이었으며 최근 청년 실업의 문제는 대학생들 다수의 구체적인 논의로 이뤄지지 못해 미약한 수준으로 그쳤다. 또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도 여중고생 등의 10대들이 중심(김철규, 2008; 이해진, 2008; 이창호, 2008; 전효관, 2008)이 됐었다.

 

 2008년 촛불집회는 기존 연구들(이창호정의철, 2008; 이동연, 2008; 강성률, 2008)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세대인 청년 혹은 청소년들은 그 공간 안에서 놀이와 유희로 표현하면서 즐거움을 얻는다. 이창호(2008)는 디지털커뮤니티에 능숙한 이들이 집회 공간 뿐만 아니라 관심있는 사이버 커뮤니티에 참여해 정보를 구하거나 게시판 글쓰기, 댓글 달기 등의 활동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즐거움까지 얻고 있다고 보며 강성률(2008)은 기계와 소통하는 디지털적 방식으로 사이버공간에서 서로의 의견을 모아내고 문화제 현장으로 연결해 시위를 한바탕 즐긴다고 표현한다. 온라인 공간은 이들에게 있어서 커뮤니티에 참여해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놀이로서 자기표현의 무대가 되고 있다. 이 공간은 기본적으로 모방과 창작이 혼합되어 궁극적으로 인간의 창작적 공유지’(creative commons)를 증대시키는 세계이다(김명준, 2007). 지금 시대에 이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오프라인 공간의 연결성은 강성률(2008)디지털을 모르면 아날로그 바보가 된다라는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 온라인 문화가 적극적으로 오프라인으로 이행돼 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다.

 

 이동연(2008)2002년 월드컵의 응원문화와 촛불문화제가 카니발로서의 경험축적과 과거 최루탄으로 대항했던 모습들이 교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유산들이 운동 스타일의 진화를 예증한다고 말한다. 촛불집회의 운동의 진화는 과거 경험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한 사이버공간의 토론 행위에 있다. 이동후(2009)는 인터넷 다양한 차원과 범위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이 가능해지고 미디어와의 상호작용성이 여러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게 됨에 따라, 사이버 대중은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 과정에 참여하는 능동적 이용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세대인 현재의 대학생들은 사이버대중 중심으로서 기성세대의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인 행위를 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미니홈피의 관계맺기와 블로그의 자기표현, 다음 아고라와 같은 토론장의 의견공유가 그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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